월요일. 여느때 처럼 일을 갔다 집에 들어오는 순간 전화가 걸려왔다.
지니였다. 목소리가 착 가라앉은것이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 "오빠, 우리 결혼 다시 생각해봐야겠어요." 갑자기 심장이 멎는 느낌.
한시간후에 다시 전화하기로 하고 코로 들어오는지 입으로 들어오는지 밥을 먹고서 난 침대에 기대앉아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지난 토요일까지만 해도 우린 결혼준비에 분주했고 Castaway에 예약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하룻밤사이에 무엇이 또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을까.
지난 한달이 마치 일년처럼 느껴지며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8월말 그녀는 도망(?)치듯 뉴욕으로 우리의 결혼을 목숨걸고 반대하시던 어머니와 함께 떠났다. 그곳에 어머니 친구분이 계신다고.
공항엔 그동안 함께어울렸던 몇몇일행과 같이 갔다. 비행기를 타기전 그녀의 친구가 자신의 손가락에 있던 반지를 빼주며
둘이 부둥켜안고 동네 떠나가게 운다. 난 눈물을 삼겻다.
지난 반년동안 흠뻑 사랑에 젖어있었기에 이별은 내겐 고통 그자체였다.
가슴 한복판에 커다란 구멍이 뚤린듯 그 허전함은 헤어짐을 당해본 사람들은 이해할것이다.
정신나간 사람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보낸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정말 정신없는일들은 지금부터 벌어진다.
그들 모녀가 떠난것은 토요일인데 월요일날 목사님(이분은 우리의 강력한 지지자 이셨다)으로 부터 뜻하지 않은 전화가 걸려왔다.
지니 어머님이 전화가 왔는데 결혼을 시킬 의사가 있다고 알려왔던것이다. 내귀를 의심했다. 아니 어떻게 이런일이....
뉴욕에서 어떤일이 벌어졌나 하면...지니가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어쨋든 그건 생략하고,
우린 매일 떳떳(?)하게 전화하고 어머님께도 전화로 고맙다고 몇번이고 인사를 했다.
이사짐도 hold를 시키고 다음 주말에 LA에 올것을 약속했다.
하루종일 이생각 저생각 결혼 준비에 정신을 잃고있었는데 월요일 저녁때 지니한테 전화가 왔다.
뉴욕에 그냥 있기로 했다고. 이건 또 무슨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린가.
서울에 있는 가족들이 무지막지하게 반대를 해서 도저이 어쩔수 없다고.
그런데 알고봤더니 결정적인건 뉴욕에있는 어머니 친구분 교회 담임목사님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었다.
하늘이 또 무너저내렸다.
이걸보고 뭐라그러나. 사방팔방이 다 적으로 둘러쌓인.
도저이 견딜수없어 NY행을 결심했다. 회사에 며칠 휴가내고 아무런 대책없이 떨리고 불안한 마음을 안고
그냥 지니가 보고싶어 무작정 상경을 한것이다.
저녁이었다. NY은 이쪽 서부지역과는 많이 달랐다. 사람들 얼굴 생김새마저도 다른것처럼 느껴졌다.
어쨋든 반가운손님이 아니기에 약도 하나없이 주소와 지도하나 달랑들고 렌트카를 빌렸다.
LA의 길은 거의 바둑판처럼 되어있지만 여긴 완전 꼬불탕에 위로가는길 아래로가는길 사람완전히 촌놈 만드는게 아닌가.
한국이 뉴욕을 모델로 도시계획을 했다는 설이 있던데 맞는말 같았다.
근처에 왔는데 물어봐도 아는이가 없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해 도저히 안될것같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 섰다.
주소를 대며 도움을 청했더니 한사람이 자기집 근처라는것이다. 그래서 그사람을 태우고 간신히 집을 찾을수 있었다.
지니를 처음 봤을때 잘 있는모습에 다행스러우면서도 괴씸했고 (난 얼굴이 반쪽이됬는데..)
지니 어머님친구분이 "여긴 택시기사도 못찾는곳인데" 하시면서 감탄을 하신다.
일단 기선을 제압했다시퍼 내친김에 내심정과 여기에 온 이유를 설명드리고
오늘은 늦었으니 이곳에서 자고가라며 guestroom 으로 날 안내하신다.
처음도착할때부터 지니가 자꾸 slipper 를 내미는것이다. 그럼난 그걸신고 있다가 조금있음 벗고다니고 그럼 또 내밀고
난 slipper가 버릇이안되 또 벗고 또 내밀고... 나중에 돌아 올때 비행기에서 편지를 보고 알았지만 slipper를 신으므로
내키가 조금이라도 커보이게 할려고 그랬는데 남의속도 모르고 자꾸 벗어제껴 안타까웠다고 한다.
지니가 나보다 한 1인치는 더컸다. 그래서 테이트할때 얘는 늘 단화를 신고 다녔는데 내게 화가 난 날은
일부러 하이힐을 신고와 내가 한참을 올려다보게 해 날 주눅들게 만들므로 불만을 해소했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그녀가 날 지켜보고있었다. 아주 측은하게... 그마음 나도 다 안다.
삼엄한 경계속에서도 간신히 둘만의 시간이 주어졌으며
지니가 자주온다는 강가에 앉아 그동안 쌓였던 못한말들을 재잘대며
우린 따사로운 햇살아래 행복함을 느꼈다. 제발, 시간아 멈추어다오!
또 월요일. 뉴욕에서 돌아온 그 다음날이다. 모든사건은 월요일날 벌어진다.
아침에 지니에게서 회사로 전화가 왔다. 집을 나왔다고. 지금 LA에 가고싶은데 어떻게 가냐고...
그후 몇시간이 지난후 그곳 뉴욕의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긴얘기를 할수없으니 집에가서 전화하기로 하고
집에오자마자 전화통을 잡았다. 그 목사님 말씀이 나와 지니를 맺어주기위해 어머님을 설득하겠다는 말씀을 여러 사설과 함께
늘어놓으시는 것이였다. 그럼 또 그무엇이 이분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것인가. 어찌됫건 난 무지하게 기뻤다.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어머님과 통화를 하며 난 또한번 몇번이고 감사의 말씀을 올렸고 어머님은 마치 사위를 대하듯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는 며칠있다 정말 믿기지않게 두모녀가 LA에 온것이다.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이젠 드디어 결혼을 하는구나 생각하니 너무 기뻤다.
우리는 꿈에도 그리던 재회를 하게됬고 주말엔 Castaway에 가서 결혼 날짜도 잡고 계약도 마치고
저녁엔 우리 어머니와 지니 어머니의 만남도 가졌다.
이제는 모든게 끝났다 생각했다. 같이 살 걱정만 하면 되는줄 알았는데 웬걸 그다음 월요일 (난 월요일이 미치도록 싫다) 저녁때
지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결혼 취소 하자고. 이건또 무슨 도깨비 장난이냐.
그다음날 그녀가 임시로 살고있는 Orange County 삼촌집으로 달려갔다. 내 일하는데서 엄청 먼거리다.
이제까지 내가 알던 지니가 아니였다. 전혀 낯선사람과의 첫대면 같은 느낌. 이것이 이별임을 직감했다.
내가 얘길했다. 그래 우리 결혼 취소하자. 하지만 우리 만남은 여기서 끝낼수 없다고.
내일 San Jose에 간다고 한다. 한 일주일 쉬러간다고.
차를 몰고 집으로 오면서 생각해봤다.
이해하자. 그동안 가족들의 거센 반대에 혼자힘으로 이겨내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것이며 이제 허락이 떨어지니 허탈감과
결혼자체에 어떤 두려움이 생겼겠지 나를 사랑하지 않는것은 아닐것이다.
San Jose에 도착한날 밤에 다신 연락안할것 같았던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도착했다고.
그래. 푹쉬고 다시 이곳에 올때는 좀더 넓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시 만나자.
지니가 돌아왔다. 저녁때 거길 갔었는데 얘가 아예 집을 나와버렸다.
우리는 마치 007영화같은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난 아무것도 모르고 갔기에 약간 놀랬다.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같이있게되니 그것만으로도 난 행복할수 있었다.
한동안 같이있다가 LA에 아파트를얻었고 어머니도 오셨고 직장도 갖고
어째든 모든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변한건 하나도 없다. 어머니는 여전히 우리 결혼 반대하시고 날짜에 맞혀 결혼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또다시 기나긴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처음 지니를 만난것은 Valentine's day 때였다. 첫인상이 무척 좋았고 피부가 뽀얗고 예뻣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서귄다거나 뭐 그런건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때 내나이 35. 그녀는 25. 난 아저씨였다. 하지만 아저씨가 오빠로 바뀌는데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파아노를 아주 잘쳤다. 전공은 아나지만 오히려 감각은 전공한 사람보다 더 뛰어났다.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가까와졌다. 전화를 하기 시작했고 그게 재미가 들어 집에오면
전화통만 바라보며 이제나 저제나 전화오기를 기다렸다. 물론 나도 걸었지만.
10년차이가 별것아니군. 무언가 속에서 꿈틀거린다.
정말이지 오랫만에 사랑이란놈이 내가슴속에 싹트기 시작한다.
조심스럽게 데이트 신청을 해본다. 머뭇거림없이 승낙이다.
세번째 데이트때 그녀의 집앞에서 차를 세워놓고 나는 더듬거리면서 고백을 했다.
나이차가 많이 나지만 사랑해도 되냐고. 그녀도 뭔가 얘길하는데 횡설수설이다.
한동안 정적이 흐를때 키스를 감행(?)했다.
노래CD 가 한바뀌도는동안 우린 떨어지지 않았다.
그후 그녀로부터 수차례 편지를 받았으며 주말이면 어김없이 바닷가를 찾았고 주중에 한번 만나고
선물도 주고받고 여행도가며 매일 전화를 했다.
난 무의식중에 젊어질려고 하는 나를 느꼈고 지니도 꾀 노력을 했다.
한번은 청바지를 사줬는데 아주 이상하게 생겨먹은...이게 뭐 요즘 한국에 압구정동에서 유행하는거라나?
"야, 난 이건 정말 못입고다닌다" 그랬더니 찢어진거 살려다가 너무 충격 받을까봐 이걸 샀다나. 결국 내가 이겼지만..
두어달이 지난후 어느날 낮술을 마시자며 술을 마셔야 얘기할수 있을것 같다구.
어떻하면 좋냐고 울먹인다.
어머니가 날 만나는걸 아셨단다. 전화 bill 때문에. 거의 매일 몇시간씩 전화를 했는데 모두 같은 번호이니
누구 사귀냐고 묻더라고. 나에대해 얘길 했더니 (내가 누군지도 모를때) 무조건 반대라고 하시더라는 거다.
이유는 단하나. 나이때문에.......
그건 당연히 예상했던거지만 이렇게까지 지독(?)하리라고는 누가 알았겠는가.
지니 아버지는 의사였는데 몇년전 암으로 돌아 가셨다고 했다. 그 충격은 가족들에게 대단했었는데
두분나이차가 많이 났었다고 한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나에대해 알아보기도 전에 어머니는 물론 온 친척과 식구들이 일심단결 반기를 든것이다.
자기를 이해해주는 식구는 하나도 없다고 운다.
난 할말이 없었다.
이제부턴 본격적인 몰래 데이트가 시작되는것이다. 마켓간다고 하곤 밖에서 전화하고
이불뒤집어쓰고 하고 울면서 하고, 생각해보면 이때부터 지니가 눈물을 흘리는 날이 많았던것 같다.
집에선 날 물리치기위해 (내가 무슨 공산당인가?) 다른남자와 선도 보게하고
내가 지면으로 다 말은 못하지만 좌우지간 10년의 벽은 높고도 높은것이었다.
나도 나지만 지니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는 안봐도 뻔하다.
만날때는 내색을 안했지만 집에들어가면 그사람은 무조건 안된다고 세뇌교육을 받은것이다.
그래서 결국 뉴욕을 가지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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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주째 연락이 없다.
그동안 몇차례 헤어지자 했을때 난 인정하지 않았고 곧 다시 제자리로 돌아 오곤 했었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 이번은 장난이 아닌듯하다.
이번에도 헤어지자는 얘기가 나온다면 인정하리라.
내가 할수있는건 다했고 이제부터 벌어지는 일은 인간의 힘으론 어쩔수없는 하늘의 뜻이라 믿으리라.
하나님께 매달려도 봤다.
그러나 그 어떠한 노력도 운명을 바꿀순 없었다.
결국 이별을 선언하는데 한달이 넘게 걸렸다.
그해 크리스마스가 지난 며칠후 일년이 채안된 우리의 사랑은 이것으로 끝이나고 말았다.
잊지못할 사람이며 사랑이었던 것이었다.
난 참으로 결혼 운이 없는 사람이다.
결혼자체엔 아무 매력 없지만 어쨋든 사랑의 끝은 결혼이 아니겠는가.
그후 몇차례 다른이와 사귀어봤지만 이같은 사랑은 누구에게도 느낄수없었다.
이젠 만날수 없고 소식도 모르지만 함께했던 추억들과 함께 들었던 노래들은
영원히 가슴속에 나의 맥박과 함께 흐를것이다.
이별이 가까왔음을 알쯤에 지니가 우리집에서 메모를 남겼는데 그게 바로 양희은의 노래였다.

하나님이여 (SuperSang)
(이별후 시편 69편의 말씀을 인용해서 만들었다. 창피한 얘기지만 한 3년전에 노래를 잘하는 나의 오랜
여자친구가 이곡을 가지고 가스펠송 대회에 나갔다가 떨어졌다. 노래는 잘하는데 곡이 너무 칙칙하다고.)
feb.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