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세상을 잘 모를때면서도 마치 다 아는듯 생각하며 행동했던 시절이였다.

때 난, 참으로 내인생에 있어서 죽을때까지 결코 잊을수없는 사랑을 했다.

이를 정확히 기억하는것은 내가 열아홉 생일날 받은 카드때문이다.

"생일 축하해. 19라는 숫자는 과히 기분좋은숫자가 아닌것 같아. 너무 늙은거 같거든."
이 카드는 정확하게 21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옛날 여러친구들과 무수히 주고받았던 편지뭉치들 틈에 섞여져

먼지와 함께 옷장 어딘가에 쳐박혀있다.

 

첫사랑!

첫사랑의 definition을 어떻게 세우나에 따라 그시기가 다를수있다.

내가 생각하는 바로는 분명 이 천사같은 아이는 나의 첫사랑이였다.

처음 여자를 알았고 난 여전히 남자는 태어나서 세번정도 진정한 사랑을 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있으며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이가 바로 그 첫번째 주인공인것이다.

우린 동갑내기였고 (이친구가 나보다 4-5일 생일이 빨랐다)

피아노를 아주 잘쳤고 내게 기타를 잘친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던, 그래서 더욱 그애 앞에선 열정적으로 있는폼 없은폼

똥폼까지 다잡아가며 기타를 두들겼던 나.


분명 우린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람마음은 특히 여자의 마음은 어디서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괴상한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에 조심하지않을수가 없다.

래서 여자의 마음은 럭비공 같다고 하지않던가.

결정적인 그 한마디를 해야지만 친구사이에서 연인사이로 발전할수 있는것이다.
그런데 그한마디가 왜그렇게 힘들던지. 송창식의 노래중에 "맨처음 고백" 이라는 노래가 있다.

"말을해도 좋을까. 사랑하고 있다고. 마음한번 먹는데. 하루 이틀 사흘."

고백을 하기위해서 바닷가로 데리고 갔다.  정말 땀을 흘렸다. 아직도 바람이찬 이른봄이였는데.
그전날부터 며칠동안 고민했고 가사 그대로 "돌아서서 말할까 마주보고 말할까"를 고민했었다.
해야할 말은 못하고 엉뚱한 말만 잔뜩하면서 모래위 똑같은길을 수차례 왔다 갔다만 했다.
마침내 털어놨을때 내마음은 홀가분했고 서로가 같은마음임을 확인했을때의 행복함이란.....
그래서 다른사람은 몰라도 나에겐 이노래의 가사가 지독한 사실로 다가오는것이다.

 

처음 손을 잡은곳이 영화관이 아닌가 생각된다. Westwood 에 있는 어느극장인데 무슨영화인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너무 오래됬기때문만은 아니다. 난 영화가 시작될때부터 호시탐탐 어느순간에 그녀의 어깨를 감싸야 어색하지 않을까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그장면이 상상이 간다. 몸을 이리 비틀구 저리 비틀구 얘가 아마 눈치를 채고 속으로

웃고있었을꺼다. 오랜시간이 지난후 드디어 난 덥썩 그애의 어깨를 안았다. 아무 저항없이.

아니, 근데 내손이 떨고있지 안은가. 어, 이거 눈치채면 안되는데.

어쨋든 짜릿한 기분이였다. 부드러운 감촉이 손끝에서부터 전해지고있었다. 기분좋은 냄새와 함께...

그런데 그 짜릿함을 느낀지 얼마 지나지않아 손이 져려 오는것이다.

오죽이나 긴장을 했으면 그랬을까. 이걸 어째? 다시 손을 빼고 좀 주무른다음에 다시 올리나?

그땐 난 많이 순진했나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난 경험이 많은 사람처럼 노련미를 과시할려고 노력했다.

진한게 얼마나 좋은건데. 그나이때는 다 그런건지. 뭐든 노련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면 바보같고

멋이없는 남자처럼 생각되었다.

 

리 친구들이 잘 가던 바닷가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모닥불 펴놓고 기타치며 노래하고 춤추면서 그렇게 놀던곳이다.

래 특정지역을 제외하곤 불을 피우는건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것인데 우린 황야의 무법자처럼 정말 겁없이 지냈다.

어느날 친구와 넷이서만 double date를 했다. 내 여자친구의 친구는 우리가 잘 될수있게 가운데서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준 고마운 친구였다.

가 처음에 내문제로 갈등을 할때, 갈등이란게 별게아니고 내가 키가 작아서 별로 맘에 안들었을때 (그러고보니

난 어려서부터 작은키에 대한 complex가 있었다.) 이친구가 키가 뭐 그리 중요하냐면서 중간에서 얘기를 잘해준

생명의 은인까진 안되도 그 공로가 적지않은 인물이였다.

그날도 우리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얘들은 저 물가에가서 놀게 만들고 단둘이 모닥불을 향해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뒤 누가 먼저랄거도없이 키스를 했다. 머리털나고 처음 해보는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순간만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후론 만나면 자동이였다. 그땐 대부분 자동차 의자가 요즘엔 거의 볼수없는 bench chair 였기 때문에 운전할때도

착 달라붙어서 신호등에만 걸리면 얼씨구나 하고 파란불로 바껴 뒤에서 빵빵댈때까지 붙어있는거다.

즘 운전을하다 가끔 어린애들이 그짓하는걸보면 "막박에 피도 안마른것들이" 하며 우습게도 앞으로 생길수도

있는 내자식이나 지금 커가고있는 조카들 걱정을 하는것이다.

 

리에겐 공통점이 있었는데 우선 서로 수다를 떠는 수준이 비슷해 말이 잘통했다는 것이고

또하나는 둘다 송창식을 척 좋아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안계시는 할아버지와 그당시 방을 같이썼는데 주무시는데 방해가 되니까 화장실로 전화를 끌고가

새 통화를 했다. (이곳 화장실은 카펫으로 되어있는곳이 많다.) 한번 통화하면 서너시간은 기본이였고

한번은 아침에 일어나니 화장실이였다.

화기에선 뚜- 소리가 났고 밤새 통화를 하다가 거기서 잠이 들어버린거다. 그리곤 학교에가선 첫시간부터

기 일수였고 심하면 땡땡이를 치는 경우도 있었다. 남들 다 공부할때 땡땡이치는 기분, 안해본사람은 모른다.

리를 잘못 돌아 다니다가 경찰한테 걸리면 혼나기때문에 샛길로 잘 헤치고 나가야한다. 친구녀석중에는

땡땡이 치다가 찰한테 걸려서 경찰차타고 학교로 다시 끌려온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되면 많은 여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당히 쪽팔릴수 있기때문에 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느날 부모님이 어디가시고 내일온다고 해서 그애집에 놀러갔었다. 그애가 차를 타고 날 모시러왔다.

한참을 그애방에서 놀고있는데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일 와야할 부모님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것이다. 너무 다급한 나머지 옷장안에들어가 숨어버렸다.

어머니가 방안에까지 들어오시며 두모녀의 대화가 시작된다. 점점 대화소리가 명확해지는게 옷장 가까이에

와 있다는것을 알수있었다.

이런 대화가 생각난다. "얘, 너 내 거들 입었니?" "아니~."

"그럼 그게 어디갔지?" 하시면서 옷장을 잡으신듯하다.

"엄마, 엄마, 내가 내일 찾아줄께!" 황급히 막아서는 딸.

"아니 얘가 왜이래." 떠밀려서 나가시는 어머니.

난 심장이 멎었고 깜깜한 어둠속이었지만 내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있음을 느낄수있었다.

한참 지난후 난 옷장에서 나올수 있었고 창문을 열고 뛰어내려야만 했다. 그집 지대가 높아서 거의 2층수준의 높이였다.

조금있다가 내신발 두짝도 창문을 통해서 날아왔다. 결국 난 그 삭막한 LA 밤거리를 걸어서 집에까지 갔다.

한 10분도 안되는 거리였다.

요즘은 Korea Town에 사람도많고 차도 많아서 오히려 안전했을게다. 그땐 밤만되면 개미새끼 한마리 찾기도 힘들었다.

 

그땐 house party를 많이했었다. Disco가 한참 난리도 아니였을때다.

요즘 애들도 우리가 자랄때처럼 dance party를 많이 하는지는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그렇게 자주하진 못할것이라는게

내 짐작이다. 우선 disco라는 음악이 춤을 잘 못추는 사람에게도 쉽게 몸을 흔들수있게끔 만들어져있는데 비해

요사이 유행하는 댄스음악이나 techno, hip hop 등은 어느정도 기본기가 없이는 불가능하지않나 하는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요즘은 나이트클럽이 많아서 다들 거기가서 노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심심하면 "야, 오늘 애들불러서 춤이나 추자" 그러면 여기저기 연락을해서 애들모우고

노래준비하고 반짝이 준비해서 모임을 갖던 시절이였다. 학교같은데서하는 큰 파티가 아니라 가까운 친구끼리

20-30명 모여 하는 파티였기에 싸움이 나거나 어떤 불량스런일이 일어나는일은 없었다. 

젠가 그애 친구들과  파티를 한적이 있는데 내친구중에 좀 제대로 생긴놈 하나가 겁없이

내 여자친구에게 눈독을 들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로인해 약간의 소동이 벌어졌었다.

오랫동안 이친구와는 말도하지않고 웬수처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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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일이다.

그토록 소유하고 싶었고 영원히 함께 하고싶었던 마음이 언제그랬냐는듯이 이제는 귀찮게 까지 변해버렸다.

사랑이 식어가기 시작한다.

그것을 눈치못챌리없는 그녀가 헤어지자고 한다. 그리곤 우린 진짜 이별을 했지만 약 일주일이 지난후 난 다시 전화를

걸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고싶어 견딜수가 없는거다. 우린다시 화해하고 다시는 헤어지지말것을 굳게 약속했다.

하지만 예전같지는 않았다.

사실 그아이는 내겐 과분한 아이였다. 예쁘고 말도 재밌게 잘해서 주위에서 인기가 많았다. 눈독을 들이는 남자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품없고 가진것도 없는 내게 마음을 준것은 인간 나 하나보고 사랑한것이 아니냐고

친구한놈이 그런얘길 한적이 있다.

결혼이 뭔지도 모르면서 (지금 생각하면) 결혼하겠다고 다짐했고 내인생을 다 걸고 사랑해도 후회가 없다고 생각되던

그 사랑이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지기 시작하고있는것이다. 서서히...

 

고등학교를 낙제해서 졸업장도 못타고 (나중에 summer school 해서 간신히 make up을 했지만) 그럭저럭

Cal State Northridge에 전공없이undeclared 로 입학했다. 그곳에 간 이유는 간단히말해 대다수 친구들이 그곳으로 원서를

냈기때문이다.

대여섯명이 학교옆 아파트를 얻어 함께 지냈다. 죽어라고 공부해도 살아남기 힘든 대학생활인데 학교에서 loan타서

Las Vegas나 열심히 다니고 이거야 놀자고 학교 다니는거지 이게 어디 학생인가.

1학기를 마치고는 거의 모든 클래스를 낙제해서 그냥 학교를 때려치고 말았다. 돈을번다고 코피터져가며 일하다가

결국은 정신차리고 다시 2년제 대학부터 그야말로 기본부터 시작해서 원하는 대학까지 나올수있었지만 지금생각하면

그땐 정말 아무생각없이 살았다.

무튼 나의 첫 대학생활은 비참하게 끝이 났으며 많은 재미있는 추억거리만 남긴채 막을 내렸다.

 

대학생활 첫학기를 시작하고 얼마안돼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할 얘기가 있다고.

아파트로 오겠다는 것이다.

같이 있었던 그애의 차안이다. 헤어지는게 좋겠다고 한다. 비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헤어져도 넌 상처 받지 않을꺼야."

기다렸다는듯이 동의했고 잘 지내라느니, 좋은사람 세상에 많으니 잘 만나서 잘살라느니 이런말들을 주절주절 해댔다.

말도않되는 내얘길 들으며 그애는 언젠가 내가 그토록 열망하며 감싸않고 싶어했던 그 예쁜 어깨를 들썩거리며

흐느끼고 앉았다.

가슴이 아파왔지만 난 아무것도 할수없었다.

왜 사랑은 변해만 가야하는건지....

그후 몇번이나 전화통을 들었다 놨을까.

이렇게 우리는 헤어졌고 그후 2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첫사랑의 추억은 잊혀지질 않는다.

가끔 후회를 한다. 우리가 좀더 철이든후에 만났더라면......

 

 

 

헤어질때가 가을이였는데 그때 같이살던 친구가 요즘 한국에서 유행한다며 들려주던 노래를 들으며 씁쓸해 했었다.

노래의 분위기와 가사에 나오는 "10월의 마지막밤"이 내상황과 너무 흡사해 스피커를 껴안고는 몇번이고

연거퍼 들은 기억이 있다.

 

 

 

 

 

잊혀진 계절  (이용)           

 

따스한 그대의 (SuperSang)     

 

(헤어지고 여러해가 지난후에 만들었다. 듣기가 괴로울정도로 노래를 못한다. 그래도 기념이니 올려놔야지....)

 

 

 

Sept. 2003